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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가영 감독의 '첫여름', "빼앗긴 여름에 대한 애도"

허가영 감독이 제78회 칸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La Cinef) ’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1등 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프랑스 칸의 팔레 데 페스티벌에서  22일(현지시간)   열렸다.  ‘라 시네프’는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의 단편·중편 영화를 소개하는 칸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이다. 올해는 646개 학교, 2,679편 중 16편이 본선에 올랐다고 한다.

 

 

 

 

첫여름 줄거리 

억압의 시간들, 빼앗긴 계절의 은유

 

허가영, 첫여름

 

허가영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41기 졸업 작품으로 첫여름을 내놓았다. 러닝타임은 30분,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밀도는 장편영화를 넘어설 만큼 충분한 시간이었다. 영화는 노년 여성 ‘영순’(배우 허진)의 삶의 역사를 추적한다. 영순은 카바레에서 만난 연하 남성 학수에서 계속 전화를 걸지만 학수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학수가 설정해둔 ‘뽕짝’만이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온다. 학수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영순은 학수 아들로부터 학수가 사망했으며, “아버지의 49재가 내일”이란 연락을 받는다. 

 

 

손녀의 결혼식과 옛 연인의 49재가 겹친 날.  그녀의 49재 참석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따라가는 이야기지만, 실은 더 깊은 층위에 자리한 억압받았던 내면의 해방을 그린다. 영순의 삶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억압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편과의 관계는 ‘성관계’라 부르기 어려운 강압적 행위였고, 오랜 세월 병시중 속에서 그는 존재의 무게를 소진해왔고 이제 탈진상태에 있다. 현재도 휠체어를 밀며, 남편의 무게를 여전히 짊어지고 있다. 그의 삶은 여름이 아닌 겨울, 그것도 끝나지 않는 겨울 같았다.

 

허가영 감독은 자신의 할며니와의 이야기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할머니라는 이름에 가려진 개인의 정체성. 노년 여성들은 누구 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존재임에도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었다.  

 

허가영감독 수상내용 바로가기

‘첫여름’의 의미, 그리고 '학수'라는 이름

이야기 속 유일하게 영순을 사람으로 대해준 인물 ‘학수’는 과거 카바레에서 만난 연하의 남성이자, 그녀의 삶에 잠시 스며든 온기였다. 학수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인사뿐이다. 하지만 영순의 가족은 손녀의 결혼식 참석만을 강요한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질문을 던진다. ‘가족’이란 누구를 위한 존재인가? 허가영 감독은 영화 제목에 대해 “학수는 영순에게 ‘첫여름’을 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영순에게 여름이란, 존재가 존재로 인정받은 유일한 계절이자, 짧은 해방의 순간이었다. 그것이 바로 영화의 제목이자 주제다. ‘첫여름’은 단지 학수와의 관계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아에 대한 복원을 의미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단연코 마지막 장면이다. 영순이 추는 애도의 춤.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 춤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선다. 그것은 억압된 자아를 위한 애도이자, 자신을 향한 연민과 해방의 선언이다. 허 감독은 “그 장면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첫여름〉은 단편영화이면서도 시(詩)와 같다. 단어보다 리듬과 감정이 먼저 와닿는 작품이다.

 

 

 

허가영감독, 첫여름

 

허가영 감독은 영화의 제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영순은 오랫동안 자기 인생에서 여름을 빼앗겼던 인물이에요. 저는 그 여름을 되돌려주고 싶었어요."

'첫여름'은 단순한 계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순이 처음으로 인간적인 감정과 존중을 느낀 시기를 상징한다. 이 영화는 억압된 삶 속에서 따뜻한 기억 하나로 다시 살아나려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깊은 울림을 남긴 '애도의 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순의  '애도의 춤'은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허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 장면 하나를 위해 영화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학수를 향한 애도이자, 자기 자신을 위한 해방의 춤이다."

 

 

이 장면은 단편영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정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슬픔, 사랑, 연민, 자유가 한 화면에 담겨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첫여름, 허가영감독

 

 

 '여름을 되찾은 자의 기록'

〈첫여름〉은 노년 여성이란 존재를 사회가 어떻게 대하는지를 조용하지만 강하게 묻는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개인의 몸짓을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잃어버린 여름’을 되찾으려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짧지만 깊고, 조용하지만 뚜렷한 파문. 이것이 바로 허가영 감독의 〈첫여름> 이 칸에서 환호받은 이유다.

 

허가영감독첫여름

 

 

 

‘시네파운데이션(La Cinef)’은 영화학교 학생 혹은 졸업생들이 만든 중·단편 영화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칸영화제의 공식 부문입니다. 세계 유수의 영화학교들이 경쟁하는 자리로, 신예 감독들에게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그동안 한국은 2021년 윤대원 감독의 〈매미〉와 2023년 황혜인 감독의 〈홀〉이 2등 상을 받은 바 있었으나, 1등 상은 허가영 감독의 〈첫여름〉이 최초다.

 

 상영 계획

칸영화제 집행위원회는 허 감독의 작품성에 큰 찬사를 보내며, 1만 5000유로(약 2300만 원)의 상금을 수여했습니다. 더불어 수상작 첫여름은 오는 6월 6일, 프랑스 파리의 유서 깊은 영화관인 ‘팡테온 시네마’에서 상영될 예정. 이는 세계 영화인들과 관객들에게 한국의 단편영화를 직접 선보일 수 있는 소중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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